경제

금융권이 숨긴 '환율 1500원 시대' 도래

 미국의 국가별 상호관세 적용을 하루 앞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위험 수위를 향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 30분 기준 전날 주간거래 종가보다 1.1원 오른 1474.0원을 기록했다. 시장 개장 직후에는 전날보다 0.1원 오른 1473.0원으로 출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승폭이 확대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날 야간거래에서 환율이 장중 1477.0원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예정대로 4월 2일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가 고조된 결과로 풀이된다.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상대적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원화의 가치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환율 상승의 또 다른 주요 원인으로는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인 수출이 미국의 관세 부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꼽힌다. 미국은 최근 무역적자를 유발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각종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간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대규모 무기 수입 시 기술 제한과 미국산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 등의 철폐를 사실상 요구했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4.15로 전날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같은 시각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83.13원으로, 전날 오후 3시 30분 기준가(989.69원)보다 6.56원 하락했다. 엔/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1엔 하락한 149.91엔을 기록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앞으로 당분간 고환율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과 관세 전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신한은행 S&T센터의 소재용 팀장과 백석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발표한 '2025년 경제 및 외환시장 전망 업데이트' 보고서에서 2분기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1430~1500원 범위로 제시했다. 이는 작년 11월 말 발표한 연간 전망보고서에서 예상했던 2분기 평균 환율 1370원(1340~1410원)보다 무려 85원이나 상향 조정된 수치다. 3분기와 4분기에는 각각 평균 1410원(1380~1440원), 1420원(1390~1450원)으로 예측했다.

 

신한은행은 또한 환율의 하방 경직 가능성을 강조했다. 미중 갈등 심화와 통화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해 환율이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과거 정치적 불안정 시기에 이벤트 성격에 따라 3~5%의 환율 상승이 발생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앞으로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연이은 미국 대선 관련 이벤트와 글로벌 투자자들의 달러 자산 선호 현상이 한국 원화의 안정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외 불확실성 요인들이 지속되는 한,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력은 쉽게 완화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에게 환율 변동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전략을 수립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특히 수출 기업들은 환헤지 비율을 적절히 조정하고, 개인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환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이혜훈 "韓경제, 알고도 방치한 '회색 코뿔소' 상황"

 이혜훈 신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한국 경제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 상황을 '회색 코뿔소'에 비유하며, 단기적 대응을 넘어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 후보자는 29일, 서울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로 첫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가 단기적으로는 여러 악재가 겹친 '퍼펙트스톰' 상태에 놓여있다고 진단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는 이미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를 방관해 온 구조적 위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불필요한 지출을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확보된 재원을 민생 안정과 미래 성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재정 운용의 대전환을 예고했다.이 후보자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로 지목한 '회색 코뿔소'는 총 다섯 가지다. 심각한 인구 위기,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 날로 극심해지는 양극화, 산업 및 기술의 대격변, 그리고 지방 소멸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회색 코뿔소'는 거대한 몸집으로 멀리서부터 다가와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사람들이 그 위협을 애써 무시하거나 안일하게 대응하다 결국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뜻하는 용어다. 이 후보자는 이들 5대 위기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한 '블랙스완'이 아니라, 오랫동안 수많은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사회 전체가 사실상 방치해 온 결과물이라고 날카롭게 진단했다. 이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제대로 된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던 과거의 정책적 실패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이러한 엄중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이 후보자는 기획예산처의 출범 이유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그는 눈앞의 현안에만 매몰되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대응으로는 구조적 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더 멀리, 더 길게 내다보는 전략적 사고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신설되는 기획예산처가 미래 비전에 기반한 '기획'과 국가 재원 배분인 '예산'을 유기적으로 연동시키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그때그때 필요한 곳에 예산을 배분하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고, 장기적인 국가 발전 전략이라는 큰 그림 아래에서 재정이 전략적으로 투입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궁극적으로 이 후보자는 국민의 세금이 단순한 소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투자가 되고, 그 투자의 과실이 다시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전략적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을 기획예산처의 최종 목표로 삼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운영 원칙으로 △더 멀리 길게 보는 기동력 있고 민첩한 조직 △권한은 나누고 참여는 늘리는 열린 조직 △운용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신뢰를 얻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 대한 질문에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서도 즉답을 피하고 추후 별도의 자리를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해, 향후 재정 정책 방향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