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국계 조니 김, 내달 우주로 떠난다

한국계 우주비행사 조니 김(41)이 첫 우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4월 8일 러시아의 소유즈 MS-27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떠난다. 조니 김은 이번 임무에서 과학 연구와 기술 시연을 맡게 되며, 약 8개월 동안 ISS에서 활동을 한 뒤 지구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번 우주 임무를 앞두고 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대감"을 표하며, 우주정거장에서의 과학 연구가 차세대 인류에게 영감을 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니 김은 현재 러시아 스타시티에서 우주 임무 준비를 위한 훈련을 받고 있다. 그는 NASA에서 8년 동안 활동하며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우주 임무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주 임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ISS에서의 가장 큰 기대는 우주유영이 될 것이라고 밝히며, 태양 전지판 보수 작업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ISS는 1998년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으로 건설된 우주정거장으로, 지구에서 약 400km 상공에서 하루 15.54번 지구를 돌며 다양한 국가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니 김은 러시아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NASA와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우주선 좌석 교환 협정을 체결하고 서로의 우주비행사를 상대국 우주선에 태우고 있다. 이번 임무 역시 이러한 협력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조니 김은 "소유즈는 러시아어로 '연합'을 의미하는데, 이는 양국 간의 오랜 협력 관계를 잘 나타내는 단어"라며, "미국 대표로서 뿐만 아니라 양국 간의 협력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조니 김의 이력은 단순한 우주비행사로서의 성취만이 아니다. 그는 미 해군 소령이자 의사로서도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1984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해군에 입대해, 해군 특수전 요원으로서 잠수부, 특수정찰, 저격수 등 다양한 특수작전 자격을 갖추고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어 100여 차례의 특수작전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군 훈장을 수여받은 그는 전투 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동료들의 기억을 되새기며 의사의 길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샌디에이고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최우등생으로 졸업한 뒤 하버드대 의대에 입학해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응급의학 전문의를 거쳐, 해군에서 조종사 훈련을 수료해 해군 전투기 조종사이자 비행 외과 의사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경력은 그를 단순히 우주비행사로서만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만들어주었다.

 

조니 김은 또한 어린 시절, 알콜 중독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 속에서 성장하며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는 이와 같은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네이비실에 입대했다. 그는 "당신은 나쁜 카드들을 갖고 태어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계속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며, 누구나 자신의 운명과 길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조니 김은 우주 임무 수행을 통해 인류를 위한 과학 연구와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는 "우주정거장에서 이루어질 과학 연구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 연구가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우주 비행을 통해 얻은 경험이 단순히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서, 우주 탐사와 협력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우주 임무는 조니 김에게 있어서 단순한 첫 번째 우주 비행이 아니라, 그가 쌓아온 경력과 인생의 의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의 우주 비행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특히 그가 지닌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과 고난을 극복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럭비 국대 윤태일, 4명 살리고 떠난 그의 마지막 경기

 럭비 국가대표 출신 윤태일 씨가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뒤 4명의 환자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라운드를 뜨겁게 누볐던 그의 심장은 이제 다른 이의 몸에서 계속 뛰게 됐다.지난 8일, 윤 씨는 퇴근길에 불법 유턴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평소 장기기증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밝혀왔던 고인의 뜻을 존중해 가족들은 기증에 동의했다. "뛰는 것을 좋아했던 고인만큼 누군가 운동장을 달려주길 바란다"는 마음이었다.경북 영주 출신인 고인은 럭비 선수였던 형을 동경해 중학교 시절 처음 럭비공을 잡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럭비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2010년 광저우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2회 연속 동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뤘다.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에는 체육발전유공자 체육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속팀이었던 삼성중공업 럭비단 해체 후에는 회사에 남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럭비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그의 삶은 럭비와 가족,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었다. 특히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10년 넘게 한국해양대학교 럭비부 코치로 활동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자신의 연차를 모두 모아 선수들의 합숙 훈련에 동행하고, 선진 럭비를 배우기 위해 1년 넘게 일본어를 공부할 정도로 럭비에 진심이었다.고인의 아내 김미진 씨는 "마지막 모습까지 멋있고 대단한 사람이었다"며 "가족으로 함께 한 모든 순간이 고마웠다. 우리가 사랑으로 키운 딸은 걱정 말고 하늘에서 편히 잘 지내길 바란다"는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