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SNS가 만드는 광기의 집단"...현대판 인지부조화의 실체

 인간의 심리를 설명하는 '인지부조화'라는 개념이 최근 정치권에서 주목받고 있다. 태도와 행동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현상을 일컫는 이 용어는, 현재 국민의힘이 보이는 이중적 태도를 정확히 설명한다. 계엄령의 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국민 앞에 사과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탄핵 절차를 밟으려 했던 당 대표를 축출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지부조화 현상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인물이 미국의 사회학자 레온 페스팅거다. 그는 1954년 한 사이비 종교 집단에 잠입해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 집단은 대홍수로 인류가 멸망하고 소수만이 외계인에 의해 구원받을 것이라 주장했다. 이 연구는 후에 '예언이 끝났을 때'라는 사회심리학의 고전으로 출간됐다.

 

페스팅거의 연구에 따르면, 오랫동안 믿어온 잘못된 신념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외면하고, 객관적 사실과 데이터도 부정하며, 논리적 반박마저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믿음이 명백히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때 오히려 더 강하게 그 믿음에 매달리는 현상이다. 이는 이미 투자한 시간과 노력, 감정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심리적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 사회에서는 SNS와 같은 소통 플랫폼을 통해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더욱 쉽게 연대할 수 있게 되었다.

 

1950년대의 소규모 사이비 집단과 달리, 오늘날의 인지부조화 현상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될 수 있으며 권력과 결합했을 때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이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이며, 페스팅거의 연구가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의미한 이유다.

 

예언이 끝났을 때, 레온 페스팅거 외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

 

"강간범은 집유 6개월, 저항한 피해자는 10개월?" 61년 전 뒤바뀐 정의가 바로 잡히다

 부산지법 352호 법정에서 23일 오전,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부산지검 정명원 공판부 부장검사가 피고인석에 앉은 79세 노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이 노인은 61년 전인 1964년, 18세 나이에 성폭행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저항했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중상해 혐의로 기소됐던 최말자씨다. 당시 검찰은 그녀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영장 제시도 없이 구속했다. 1965년 1월, 최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반면 성폭행을 시도했던 노모(당시 21세)씨는 강간미수 혐의는 다뤄지지 않고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으로 재판을 받아 최씨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의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무거운 형을 받는 부조리한 결과였다.56년이 지난 2020년, 최씨는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내 재심을 청구했다. 오랜 법적 다툼 끝에 지난해 재심 절차가 시작됐고, 이날 첫 공판이 열렸다.공판부장이 직접 법정에 서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더욱이 정 부장검사는 피고인을 '최말자님'이라고 존칭하며 검찰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는 "재심 개시 결정의 취지에 따라 검찰은 사실관계부터 법률 판단에 이르기까지 치우침 없이 재검토했다"고 밝히며, 5분가량의 짧은 발언 후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조용하던 법정은 순식간에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무죄를 구형한 정 부장검사는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35기로 2006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지난해 공판분야 최초로 공인전문검사 1급인 '블랙벨트'에 선정된 바 있다.이날 최씨는 법정을 나서면서 홀가분한 표정으로 손을 치켜들며 "이겼습니다"를 세 번 외쳤다. 법정 밖에서는 그동안 최씨를 지지해온 연대자들과 포옹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한국여성의전화는 검찰의 무죄 구형에 대해 "61년 만의 검찰의 사과는 너무 늦었고 당연하다"며 "지금이라도 당시 부정의를 바로 잡고자 하는 검찰의 구형은 최말자 님 뿐 아니라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이번 사건은 단순한 한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한국 사회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사법 시스템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6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이루어진 검찰의 사과와 무죄 구형은 늦었지만, 정의가 실현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