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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언론 발칵! '김상식 감독이 해냈다'... 충격적인 결과 공개

 2024년 새해 벽두부터 베트남 전역이 축구 열기로 들썩였다. 한국인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동남아시아 최대 축구 대회인 2024 미쓰비시일렉트릭 컵에서 숙적 태국을 꺾고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태국 방콕의 라차망칼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 2차전 원정경기에서 태국을 상대로 3-2 승리를 거뒀다. 앞서 홈에서 치른 1차전에서도 2-1로 승리했던 베트남은 최종 합계 5-3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 이번 우승은 통산 8번의 우승을 자랑하는 태국의 3연패를 저지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비롯해 호찌민, 다낭 등 전국 주요 도시는 축구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거리마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응원전을 펼쳤고, 승리가 확정된 후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규모 축제의 장을 연출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베트남의 상징인 금성홍기(붉은 바탕에 황금색 별이 새겨진 국기)의 물결이었다. 시민들은 국기를 손에 들거나 몸에 두르고, 심지어 얼굴에 그려 넣기까지 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오토바이의 나라'라는 별명답게 금성홍기를 단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심야까지 도로를 메우며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다.

 

하노이의 대표적 관광지인 호안끼엠 호수 주변은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공안이 도로를 통제해야 할 정도였다. 최근 교통 범칙금이 대폭 인상되면서 '저승사자'로 불리던 교통경찰들조차 이날만큼은 엄격한 단속을 잠시 접어두고 시민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목격됐다.

 

지난해 5월 부임한 김상식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했다. 박항서 전 감독이 6년간 이어온 '베트남 축구 르네상스'를 이어받아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반면 일본인 이시이 마사타다 감독이 이끄는 태국은 이번 패배로 아시아 축구계에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됐다.

 

194억 벌고도 파산한 전 빅리거, 장인 살해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받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와 일본프로야구를 오가며 선수 생활을 했던 대니얼 세라피니(51)가 장인 살해 혐의로 1급 살인 및 살인미수 유죄 판결을 받았다. 16일(현지시간) AP통신을 비롯한 여러 현지 매체들은 세라피니가 캘리포니아주 플레이서 카운티 법원에서 열린 배심원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다음 달 19일 최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사건은 2021년 6월, 세라피니가 캘리포니아주 타호 호수 인근에 위치한 장인과 장모의 집에 침입해 총기를 사용해 장인을 살해하고 장모에게 중상을 입힌 것이다. 장모는 사건 이후 약 1년간 중태에 빠져 있다가 결국 사망했다.검찰은 세라피니가 목장 사업 자금 지원 문제로 장인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고, 이것이 살인의 동기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또한 세라피니가 주변인들에게 장인과 장모를 살해할 수 있다면 2만 달러(약 2800만원)를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말한 정황도 밝혀졌다.세라피니는 선수 시절 총 1400만 달러(약 194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렸으나, 은퇴 후 투자 실패 등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이 장인과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이번 사건에는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는데, 검찰은 세라피니의 불륜 관계에 있던 여성을 체포하여 공범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 여성은 세라피니의 아내와 친구 관계였으며,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세라피니 가족의 보모로 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단순한 금전적 갈등을 넘어 복잡한 인간관계가 사건의 배경에 있었음을 시사한다.세라피니의 변호인은 사건 당일 CCTV에 찍힌 용의자의 체격이 세라피니와 차이가 있다고 항변했으나, 이러한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왼손 투수였던 세라피니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통산 15승 16패, 평균자책점 6.04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는데, 지바 롯데 머린스와 오릭스 버펄로스 소속으로 뛰었다.2007년 중순에 미국으로 돌아온 세라피니는 콜로라도 로키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복귀했으나, 시즌이 끝난 후 약물 양성 반응으로 징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무대를 떠나 멕시코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결국 은퇴했다.한때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를 오가며 활약했던 투수가 이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라는 최악의 형벌에 직면하게 되었다. 세라피니의 사례는 스포츠 스타의 화려한 삶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현실과 은퇴 후 경제적 몰락이 초래할 수 있는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