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친환경이고 뭐고 경쟁이 먼저다' 10대 그룹, 신년사로 '경쟁' 나선다

 2025년 국내 10대 그룹이 던진 화두는 단연 '경쟁'과 '고객'이다. CEO스코어의 신년사 키워드 분석 결과,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두 단어가 각각 41회씩 언급되며 공동 1위를 차지했다. 고환율과 고물가 지속, 글로벌 경기 침체,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 등 대내외 리스크가 산적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특히 포스코그룹이 '경쟁' 키워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철강산업 불황으로 실적 위기에 직면한 포스코는 장인화 회장을 통해 "기술의 절대적 우위 확보"를 강조하며 해외 투자 확대와 탄소중립 이행, 원가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천명했다. 유통공룡 신세계(12회)와 SK(6회), 한화(5회) 역시 경쟁력 제고를 신년 과제로 내세웠다.

 

'고객' 키워드는 LG그룹이 4년 연속 최다 사용했다. 구광모 회장은 "미래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기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하겠다"며 고객 중심 경영을 재확인했다. 이는 불황기에 고객 만족도를 높여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AI 키워드의 급부상이다. 지난해 18위였던 AI는 올해 9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SK그룹이 12회나 언급하며 가장 적극적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AI 산업의 급성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전 구성원의 AI 실무 역량 강화를 주문했다. 반면 작년 화두였던 ESG와 친환경은 올해 톱10에서 밀려났다.

 

미래(35회), 성장(32회), 혁신(31회), 글로벌(29회), 기술(27회) 등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특히 삼성은 기술 키워드를 최다 사용하며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통한 재도약을 강조했다. 한종희·전영현 부회장은 신성장 동력 확보의 핵심으로 기술 혁신을 제시했다.

 

이처럼 2025년 10대 그룹의 신년사는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경쟁력 강화와 고객 가치 창출, AI 혁신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다만 ESG 경영의 후퇴 조짐은 향후 기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재계는 당장의 실적 개선과 중장기적 가치 창출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노조엔 날개, 기업엔 올가미..기업들, ‘더 센 상법’에 초비상

 기업들이 연일 국회를 통과하는 규제 법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투자 확대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주문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노동권 강화와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기업 경영을 제한하는 법안을 연이어 처리하고 있어 현장의 혼란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이어 25일에는 ‘2차 상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업계는 충격에 빠진 상태다.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상법 개정안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하는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석 의원 182명 가운데 180명이 찬성하며 여당의 압도적 찬성 속에 가결됐다. 개혁신당 의원 두 명이 기권표를 던졌으며, 국민의힘은 “경제 내란법”이라며 본회의에 불참했다. 앞서 지난달 1차 상법 개정안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한 데 이어 추가적인 기업 규제책이 통과된 것이다.재계는 경영권 침해와 소송 남발을 가장 큰 우려로 꼽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나 기업 사냥꾼들이 국내 기업 경영에 깊숙이 개입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해외 자본의 공격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 이는 단순히 법적 분쟁을 넘어 국내 기업의 장기 투자 전략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노동계와 관련한 변화도 기업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하루 전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고 노동쟁의 범위를 넓혔으며,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철강업계에서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손실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손배 청구가 제한되면 불법 파업에도 사실상 면죄부가 주어진 셈”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반도체 업계 역시 걱정이 크다. 글로벌 경쟁 심화 속 기술 인재 확보에 매달려야 하는 시점에 줄을 잇는 교섭 요구가 이어질 경우 생산 차질과 투자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삼성전자 협력사 노조가 최근 통상임금 지급과 임금 체불 문제를 두고 삼성전자를 직접 상대로 요구에 나선 사례는 대기업 노조 투쟁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정치권의 행보는 정부 기조와도 충돌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주요 그룹 총수들을 잇따라 만나 투자 확대와 대미 협력을 주문해 왔다. 지난 6월 6대 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가 통과시키는 법안들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진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고율 관세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이미 투자 보류 여부를 고민 중인데, 주주소송과 파업 리스크까지 떠안으라면 신규 투자를 감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대기업들도 같은 입장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노동자의 권리 보장은 존중해야 하지만, 상법 개정과 같은 제도 변화가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대규모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투자 확대 압박과 규제 강화가 동시에 이어지는 현 상황이 기업인들에게는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가운데 재계 총수들은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 일정에 참여하기 위해 출국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사절단 명단에 포함됐다. 허태수 GS그룹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등도 동행했다. 이번 방미 일정은 한미 간 경제 협력 확대와 대미 투자 논의가 핵심 의제지만, 국내에 남은 규제 환경은 총수들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숙제로 남았다.재계는 현재 상황을 “투자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발목을 잡는 이중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 역할을 강조하지만, 정치권의 규제 입법이 이어지면 국내 기업 환경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는 투자 감소, 고용 축소, 해외 이전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기업들은 정치권이 단기적인 노동·주주 권리 강화에만 몰두하지 말고,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